
누구에게 전화를 걸까 생각하다가 몇 사람의 이름에서 눈길이 멈춘다. 한 사람은 너무 바쁠 것 같고, 한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가족들에게 전화했다가는 괜한 걱정을 끼칠 것 같다. 결국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못한 채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카카오톡 단체방도 여러 개이고, 직장에는 늘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 교회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정말 힘든 날, 지금 혼자 있기가 힘들다고 말할 사람을 떠올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울시는 2025년 4월부터 ‘외로움안녕120’을 운영하고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시민이 120으로 전화해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24시간 상담창구다. 필요한 경우 복지서비스와도 연결한다.
개소 1년 만에 상담은 4만 건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125건이었다. 상담의 61.4%가 야간과 심야에 이루어졌고, 이용자의 81%는 ‘외로움을 털어놓을 대화상대가 필요해서’ 전화를 걸었다. 40~60대가 77.6%로 가장 많았고 청년층도 18.8%를 차지했다. 밤이 되어서야 견디기 어려워지는 마음이 그만큼 많았던 셈이다.
외로움은 흔히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생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담실에서 만나는 외로움은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교회에서 사람을 챙기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누구에게 이야기했느냐고 물으면 없다고 대답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계산한다. 나를 어떻게 볼까,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다음에 만났을 때 어색해지지는 않을까. 늘 괜찮은 모습을 보여왔던 사람에게는 힘들다는 한마디가 참 어렵다.
관계가 없어서만 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관계가 소중해서 입을 닫는 경우도 있다. 나를 부담스러워할까 봐, 지금까지의 관계와 달라질까 봐 혼자서 견딘다. 누군가가 곁에 없어서 외로운 사람도 있지만, 가까운 사람을 잃을까 봐 외로움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 셈이다.
그래서 관계의 숫자가 외로움의 크기를 말해주지는 못한다. 전화를 걸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사람에게 전화해도 된다는 것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다. 그 사이에는 이런 망설임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사람을 필요로 해도 괜찮을까.’
힘들 때는 해결책만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같은 얘기를 반복해도 들어줄 사람, 며칠 뒤 괜찮아졌느냐고 물어봐 줄 사람, 무엇보다 힘든 모습을 보여준 뒤에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교회도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매주 함께 예배하고 식사하고 기도제목을 나누지만 막상 힘들다고 말하려면 망설여지는 때가 있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되고, 늘 다른 사람을 돌보던 입장에 있던 사람은 자신의 무너진 모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목회자나 직분자처럼 기대를 받는 위치에 있다면 그 부담은 한층 더 커지게 마련이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공동체 안에서도 ‘괜찮지 않은 나’를 보여주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보다, 누군가 힘들어졌을 때 숨기지 않아도 되는가에서 공동체의 깊이가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서울시가 외로움을 공공정책의 영역으로 가져왔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외로움 없는 서울’ 정책 아래 전화상담과 고립·은둔 가구 지원, 고독사 예방을 위한 안부 확인, 사람들의 연결을 돕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외로움을 사회가 함께 살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정책이 만들어주는 연결과 일상의 관계가 만들어주는 연결에는 각자의 몫이 있을 것이다. 24시간 전화를 받아주는 사회적 안전망과 함께 “오늘은 혼자 있기가 좀 힘들어요”라는 말을 건넬 수 있는 관계도 필요하다. 설명을 잘하지 못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삶의 풍경은 달라진다.
휴대전화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이름 중, 마음이 무너지는 날 망설이면서도 결국 누를 수 있는 이름이 있는가.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어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나는 그런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을까.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