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그렇게 화를 낼 일이었을까요?”
남편과 크게 다툰 이야기를 하던 그가 물었다. 주말에 가족이 함께 식사하기로 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다른 약속을 잡았다. 평소 같으면 넘어갔을 일인데 그날은 달랐다. 서운하다는 말에서 시작해 지나간 일까지 꺼냈고, 결국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남편도 놀랐지만 제가 더 놀랐어요. 저는 원래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누군가 부탁하면 웬만하면 들어주었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대개 참고 넘어갔다. 교회에서도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을 피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착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대화를 이어가면서 뜻밖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 자주 화를 내고 있었다. “왜 그것도 못 참았을까요. 제가 너무 예민한가 봐요.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을까요.”
분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 관계에서 생겨난 서운함과 분노를 자기 쪽으로 돌려놓고 자신을 탓하며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착함은 성격의 장점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때가 있다.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의 분위기를 먼저 살펴야 했던 아이는 화를 내거나 요구하기보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읽으며 관계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
그때는 현명한 방법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뒤에도 같은 방법만 사용하면 상대를 이해하고 또 이해하는 동안 정작 자기 마음은 이해받지 못한 채 남는다.
분노에는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존중받지 못했을 때, 자신의 경계가 침범될 때 마음은 분노를 통해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듣지 못하면 오히려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게 된다.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사람 가운데 자기 비난이 심한 경우가 있다. 타인과 싸우지 않는 대신 자기 자신과 계속 싸우는 셈이다.
신앙 안에서는 이 과정이 더 복잡해지기도 한다. 좋은 성도는 참고 이해하며 용서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인내와 용서가 너무 빨리 요구되면 자신의 상처를 느낄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기도하면서 내려놓으세요”, “그래도 용서해야지요”라는 말 앞에서 그는 ‘내 믿음이 부족해서 아직 화가 나는 걸까’라고 자신을 의심한다.
시편에는 억울함과 원망, 분노가 숨김없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성경에서 지우지 않으셨다.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잘 정리된 감정만이 아니다.
“남편에게 화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또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그가 힘들었던 것은 한 번의 약속 취소만이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계획을 미루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챙기며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기대는 늘 나중으로 밀리는 듯했다. 그날의 분노는 ‘왜 약속을 취소했느냐’보다 ‘나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분노를 따라가 보니 공격성보다 관계에 대한 소망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때로 분노가 전하는 것은 파괴의 욕구가 아니라 관계가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신호다. 존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경계도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분노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화를 없애는 연습보다 화를 번역하는 연습이 필요할 때가 있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에서 멈추지 않고, ‘이 화는 지금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지?’라고 묻는다. 분노를 번역하면 서운함과 두려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지켜야 할 경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참는 것과 폭발하는 것 사이에는 제3의 길이 있다.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무엇이 힘들었는지 이해하며 필요한 것을 상대에게 적절한 언어로 전하는 길이다. “괜찮아” 하며 자신을 지우지도 않고, 분노로 상대를 밀어내지도 않으면서 관계 안에 나를 남겨두는 방법이다.
상담이 끝날 무렵 그가 말했다.
“저는 화가 나면 나쁜 사람이 되는 줄 알았어요.”
“화가 난 당신이 나쁜 사람이었던 게 아니라, 화가 난 당신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뒤로 미뤄왔다면 이제는 분노를 없애기보다 그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화를 내지 않는다고 관계가 건강한 것은 아니다. 내가 사라져야 유지되는 평화라면 그 평화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분노를 잘 다룬다는 것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다. 내 마음이 보내는 말을 알아듣고, 필요한 것을 적절한 언어로 전하는 일이다. 분노를 그렇게 번역할 때 관계를 지키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김화순 목사
중앙연회 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본 칼럼은 실제 상담 장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으며,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사례의 일부 내용을 각색하였습니다.>
출처 : weekly기독교타임즈(https://www.kmc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