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앞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짧은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급한 연락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확인해야 할 문자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 몇 초 동안의 시간이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만히 서 있는 상태, 아무 자극도 없는 순간이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장면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로 시작되지만 독자가 멈칫하게 되는…

아직 결론 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는 것

  흔히들 결정장애라는 말을 한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는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되며,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 정하지 못하고 보류하고 확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는 미완성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결론에도 장애라는 말을 붙이나 싶어 간과하고 흘려보내던 단어였지만, 마음의 임시 거처에 놓여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말이 사용되는 이유를 다시…

기억은 어떻게 오늘을 만드는가

  성탄이 다가오면 자연스레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교회에 모여 성탄 축하 발표회를 준비하던 기억들, 잘되지 않는 영어 발음으로 캐롤을 부르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던 얼굴들, 사회를 맡아 손에 땀을 쥐고도 태연한 척 애쓰던 순간, 집집마다 다니며 새벽송을 부르고 간식거리를 한 바구니씩 얻어 쌓아두고, 으레 꼬박 밤을 새우며 성탄의 새벽을 맞이하곤 했다. 그때의 성탄 행사는 지금보다…

살아버린 날들은 수정이 안되지만

      살면서 몇 번이나 되뇌이는 말이 있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정말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기쁨보다 고통이 유난히 컸던 날들,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했던 시간들, 마음속에서 수없이 고쳐 쓴 장면들. 삶은 편집의 권한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살아버린 날들은 수정도, 삭제도 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2025년 KCPE(한국임상목회교육협회) 후반기 공개강좌

2025년 11월 24일(월) 오후 1시 신촌 세브란스 병원 예배실(본관6층)에서 KCPE(한국임상목회교육협회) 후반기 공개강좌가 열렸습니다. “자해와 자살” <위기 개입을 위한 돌봄 전문가의 필수 요소> 이라는 주제로  이동훈 교수(성균관대학교)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  후 전문위원 임명, CPE 수료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내년 전반기 학술대회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무너진 마음의 시대2 _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공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문턱은 낮고 환대는 자연스러워 상처받고 외로웠던 이들이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곳이 교회다. 그러나 그 따뜻한 환대와 열린 문이, 준비되지 않은 교회의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여러 교회에서 발생한 돌발 상황들은 이 충돌의 양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예배 중 설교자를 향해 갑자기 달려드는 사람, 비명을…

무너진 마음의 시대1_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

  저녁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저쪽에서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달리면서 옷을 하나씩 벗어던졌고, 뒤따라오는 경찰을 연신 돌아보며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버스와 자동차 안에 있던 사람들, 길을 걷던 이들이 그 장면을 바라보았지만,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는 몇몇을 제외하면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내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일행에게…

은총의 아이러니

  세상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 열심히 준비한 일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옳다고 믿은 일이 도리어 외면받기도 한다. 애쓴 만큼의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 마음이 복잡해진다. 슬프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절망스럽지는 않고, 화가 나지만 또 한편으론 후련한 감정들이다. 슬픔과 분노, 허무와 안도가 서로 밀고 당기며 마음 안에서 자리 다툼을 벌이는 듯하다. 서로…

우리가 놓친 생명의 목소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백세희 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의 손에 들려 한국 사회의 감정 풍경을 바꾼 책이었다. 제목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 문장이었다. 삶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떡볶이 같은 작은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그 모순은 사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기분부전장애를 앓으며 자신의 정신과 치료 과정을 담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