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내담자는 부모 이야기를 하다가 한참을 울었다. 큰 폭력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버림받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끝내 입 밖으로 꺼낸 말은, “한 번만 제 편이 되어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였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그의 부모 얼굴이 그려졌다. 그분들은 분명 자식을 사랑했다고 말할 것이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시간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 말 역시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자식에게 남은 기억은 달랐다. 사랑받았다는 기억보다 혼자였다는 것이 더 진하게 남아 있었다.
상담실에서 드물지 않게 만나는 장면이다. 상처를 준 사람은 그날 있었던 사건을 기억한다. 어떤 상황이었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반면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날의 감정을 기억한다. 아무도 마음이 어떤지 물어주지 않았고 내 편이 없다고 느꼈던 순간, 혼자 견뎌야 했던 시간을 기억 속에 붙들고 살아간다.
같은 시간을 살았는데도 기억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관계가 엇갈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사람은 “그럴 의도는 없었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그때 정말 많이 외로웠어요”라고 말한다. 누구는 있었던 사실을 말하고 누구는 그때의 감정을 말하고 있다. 서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대화는 자꾸 엇나간다.
우리는 자신의 진심은 비교적 잘 기억한다. 하지만 그 진심이 상대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았는지는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책임을 다했다고 기억하고, 자녀는 마음을 기댈 곳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배우자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기억하고, 다른 배우자는 혼자 버텨야 했던 시간을 먼저 떠올린다. 목회자는 공동체를 위해 애썼던 시간을 이야기하고, 성도는 자신의 이야기가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기억들은 서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그래서 상처는 특별한 악의보다 무심함 속에서 생겨나는 경우를 더 자주 만나게 된다. 바쁘게 살아낸 하루, 당연하게 넘긴 말 한마디, 설명하지 못한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남는다.
사과가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좋은 뜻이었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닌,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렇게 느낄 수 있었겠네”라는 인정의 말이다. 그 짧은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지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아 왔다.
사람의 마음은 참 신기하다. 몇 년 동안 품고 있던 응어리가 이해받았다는 짧은 순간의 경험으로 풀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진심을 설명하는 말이 길게 이어질수록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경우도 있다.
상담을 마치고 나면, 내 의도보다 내 말이 어떻게 남았을지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표정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무심코 지나쳤던 침묵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그 질문 앞에서는 누구도 쉽게 자신할 수 없다.
상담은 누가 더 옳았는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서로 다른 기억 사이에 함께 앉아 한 사람의 의도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천천히 살펴보는 시간이 더 많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뜻밖의 장면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상대를 이해하게 되어서가 아니다. 적어도 그 사람이 그때 왜 그렇게 아팠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관계는 그때부터 새롭게 움직인다.
사랑은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 마음이 상대에게 어떻게 닿았는지 묻는 용기, 혹시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은지 귀 기울이는 시간이 이어질 때, 관계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