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해 동안 정신질환을 앓아온 60대 초반의 A는, 학창 시절 증상이 나타나 학교를 그만두었고 주변에서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것만은 싫었던 A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아픈 시간을 견뎌왔다.
성인이 된 뒤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고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다. 상태가 심해지면 며칠씩 잠을 자지 않은 채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이어갔다. 약을 복용하면 일상이 회복되었지만 몸이 처진다며 수시로 약을 거르는 일도 반복되었다.
어느 날 A가 대학에 가겠다고 했다. 교재를 사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서울의 모 대학교에 가라는 희망을 계속 보여주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수면과 약 복용 상태를 확인하고,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과 지금 반드시 그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은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A의 말을 듣는 동안 내 안에서 뜻밖의 감정이 올라왔다.
‘또 시작이구나’
화가 났고 짜증이 올라왔다.
상담에서는 내담자를 만나며 상담자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상담자의 짜증과 답답함, 불안이나 지루함까지도 단순히 제거해야 할 감정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을 내담자에게 쏟아내지 않고 성찰할 수 있다면, 때로는 상담관계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임상자료가 된다.
그 짜증 아래에는 무력감이 있었다. 약을 먹고 잠을 자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조금 안정되는가 싶으면 치료가 중단되고 다시 증상이 심해졌다. 나는 그 반복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담자는 치료를 권할 수는 있어도 대신 약을 먹거나 회복할 수는 없다. 돕는 사람이 상대의 변화까지 책임지려고 할 때 돌봄은 쉽게 무력감에 빠진다. 그리고 무력감은 때때로 짜증과 분노의 얼굴로 나타난다.
그날 나는 반복될 다음 장면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A에게 대학은 무엇이었을까.
정신적인 어려움으로 학업을 중단한 뒤 그의 삶에는 병원과 약, 입원과 퇴원이 반복되었다. 또래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병과 씨름해야 했다. 그런 사람이 예순이 넘어 다시 학생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조증 상태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자신감이나 비현실적인 계획, 종교적 확신은 치료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그 말이 증상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과 그 말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서로 다른 작업이다.
“대학에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이 질문을 던지면 ‘대학에 갈 수 있는가’에서 ‘왜 대학이어야 하는가’로 상담의 초점이 달라진다. A에게는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 학생으로 살아보지 못한 시간, 질병으로 설명되어 온 자신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보고 싶은 소망이 남아 있었을 수 있다.
증상은 치료해야 하지만 사람까지 증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상담실 밖의 돌봄에도 필요하다. 아픈 부모를 돌보면서 화가 나고,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 가족에게 지칠 수 있다. 목회자도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찾아오는 성도에게 어느 순간 ‘또 그 이야기’라는 마음이 들 수 있다. 사랑한다고 언제나 따뜻한 감정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읽는 것이다. 내가 소진되었다는 신호일 수도 있고, 상대의 삶까지 책임지려 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때로는 그 사람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한 나머지 더 이상 새롭게 듣지 않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문제 속에서도 아직 내가 듣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A의 진단명을 알고 있었고 반복되는 증상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지식이 한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느끼게 했던 것은 아닐까.
내 앞에는 학업을 중단한 뒤 수십 년이 지나 다시 학생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들은 것은 아니었다.
<본 칼럼은 실제 상담 장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으며,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연령과 상황 등 사례의 일부 내용을 각색하였습니다.>

김화순 목사
중앙연회 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출처 : weekly기독교타임즈(https://www.kmctimes.com)







